어쩌면 지금부터 내가 소개하려는 일화는 우리 가족에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이지 평범하고 소소한 보잘 것 없는 일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이 이 일을 겪으면서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 가족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을 무렵, 학교 근처인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오기 전의 집도 물론 그러하였지만 우리가족의 진짜 집이 아닌 남에게 세를 들어 사는 집이었고 예전에 살던 집과는 구조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달랐다. 내가 이사를 간 날에 처음 지금살고 있는 이 아파트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아파트 외부를 보고 왠지 모르게 조금 허름하고 우리 가족 네 명이 살기에는 좀 좁을 지도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는데 막상 집 안에 들어가보니 생각 보다 깔끔하고 아늑해보여서 마음에 들었고,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이사 오자마자 적응해서 금세 새 집에 익숙해지고 정이 들어버렸다. 지금은 이 집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우리 가족만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여기에 이사를 온 이래로 온 가족이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행복하게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집에 무언가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이사 온 다음해 여름, 장마철이 되고나서였다.

평소에 뉴스나 신문을 즐겨 보지 않는 우리 가족들은 날씨에 관해서라면 유독 둔했고 또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 우산을 가져가지 않는다거나 햇빛 드는 날에 우산을 챙긴다거나 날씨에 맞지 않게 옷을 두껍게, 혹은 얇게 입어 고생하는 일 정도는 매우 수두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들인 습관을 고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굳이 느끼지 못하는 우리 가족은 그해 여름도 장마철의 시작조차알지 못한 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말도 못할 만큼 많이 왔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다. 장마가 시작된 날 밤, 자다가 축축해서 일어나보니 이불과 옷이 다 젖어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이불에 지도를 그린 것 인줄 알고 어떻게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이럴 수가 있지 하는 생각에 창피해서 이불을 빨았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이불이 젖어 있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 방의 이불만 젖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이 자는 안방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가 많이 와서 천장으로 스며든 물 들이 벽지를 통과해 방으로 떨어져 고이는 것이었는데 아마 우리 집 바로 위층이 옥상인 탓인 듯 싶었다. 우리 가족은 매일 천장을 닦고 고인 물을 빼내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해보았지만 눅눅함과 축축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우리를 혼란에 빠트렸던 끔찍한 첫 번째 장마가 끝이 났다.

다음 해가 오고 2년 연속 그런 참사를 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 아빠께서는 집주인과 아파트의 이웃들에게 현재 집의 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해보셨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만 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아빠는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실리콘을 사다가 옥상에 물이 스며들 만한 통로를 모두 막아버리셨다. 아빠가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실리콘을 바르시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유독 더위를 많이 타시는 분이라 얼굴이 시뻘겋게 익어서 내려오셨는데 속으로 시뻘건 얼굴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보다는 훨씬 더운 태국에 가서 하루 종일 돌아다닐 때에도 얼굴이 그 정도로 익지는 않았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간에 그런 아빠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시기를 고려하지 않은 너무 섣부른 판단과 행동 탓이었는지, 막상 장마가 오고 나니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 해두었던 실리콘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어김없이 작년처럼 물은 똑같이 새었고 내 기억하는 바로는 장마철 내내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은색 양동이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듣고 지내 귀가 무지 따가웠었던 것 같다.

해가 가면 갈수록 장마에 대처하는 우리 가족의 대처 방법에는 이런 저런 노하우가 더해져만 갔다. 3번째 장마가 오기 전부터는 매일 꼼꼼하게 일기예보를 확인했고 비가 온다는 날이면 미리 벽지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 그 구멍을 휴지로 막고 밑에 양동이를 갖다 대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니 습기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고 빗물을 받아서 변기 물을 내릴 때 쓰거나 욕실 청소를 할 때 쓰거나 그 외의 다른 곳에 활용 할 수 있어 새는 물도 줄이고 물 값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자는 동안은 이불 위에 양동이를 두고 잘 수 없어서 자고 일어났을 때 얼굴에 물이 묻어있는 것은 아직도 여전했다. 이제는 임시방편이 아닌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우리 가족은 업자를 불러 옥상공사를 했다. 사실 집주인의 도움도 있었지만 우리 집도 공사에 필요한 비용을 어느 정도 보태야 했지만, 나와 우리 가족들이 앞으로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에 돈을 내는 그 당시, 몇 만 원의 돈 정도는 그다지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요란한 옥상 공사가 끝나고 나서부터는 웬만한 비의 양 정도는 우리 집 천장이 모두 견뎌내었다.

어차피 장마 때 물 새는 것을 막기 위한 공사였으므로 장마철에 직접 부딪혀봐야 그 공사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있었는데, 모두가 모여 장마가 오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리 가족 모두가 올해는 정말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척이나 초조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마가 왔다.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정말 집 안이 습했다. 하지만 끝날 때 까지도 우리 집 천장은 끄떡없었다. 장마가 끝난 뒤 우리 가족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평생가도 그때의 기분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가장 기뻤던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빗물로 인해서 밤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뉴스를 자주 챙겨 보게 되었고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을 들어도 코웃음을 쳤던 것 같다. 이제 우리 집은 비가와도 끄떡없다며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장마는 물론이고 비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뭔지 모를 감정이 생겨나 일기예보를 매일매일 챙겨보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가족 모두 비 오는 날이면, 아니 흐린 날이면 우산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른 가족이 챙기기 전에 먼저 우산을 꺼내 현관문 앞에 놓아주는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더 이상 날씨에 맞지 않게 옷을 입고나가 고생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기예보를 본 사람이 보지 않은 다른 가족에게 알려주어 나의 가족이 애먹지 않도록 하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가 늘어난 것 같다. 당연히 대화가 늘어나면서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은 딱히 일기예보의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일기예보를 보면서 자연현상을 극복해 나갔다고 보는 것이 더욱 옳지 않나 싶다. 하지만 여름철에 장마와의 독하디 독한 몇 차례의 전쟁을 겪고 나서 일기예보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나니 그의 도움을 받는 일이 점점 늘어나 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동안은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일기예보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일기예보가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의 삶에 꽤나 많은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

아직도 장마철이 되면 혹독한 전쟁을 치르던 그 때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비록 지금은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그때가 정말 즐거웠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그런 재미있는 전쟁은 다시는 겪어보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의논하고 대처하고 일기예보를 챙겨보면서 더욱 가까워지게 도와준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다. 지금도 예전의 우리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서 빨리 극복해내기를 바란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뒤늦게라도 일기예보의 고마움을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