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를 따라 우리 가족이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가 위치한 Charlottesville에 가 있을 때였다. 미국에서는 날씨를 계속 알려주는 채널이 있는데, 어느 날 대서양 연안에 Isabella라는 태풍(미국서는 ‘허리케인’이라고 부름)이 접근 중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게 되었다. 그 지역으로 수십 년 만에 찾아오는 태풍이라고 하였다. 다른 정규 방송 중에도 TV 화면 아랫부분에 태풍이 접근 중이니 근처 모든 지역의 학교와 공공시설들은 휴무에 들어간다는 안내가 계속되었다.

        ‘아∼ 학교에 안 가도 되겠구나!’

        나는 학교에 가지 않으면 일단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니 잠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집 주변에는 큰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태풍이 불면 큰 나무들이 쓰러지기도 한다는 말을 들어서 한편 무섭기도 했다. 아빠는 나무가 쓰러지는 경우에 대비해서 잠을 잘 때도 창가보다는 가능한 한 집의 가운데 쪽에 머물러야 한다고 알려 주셨다. 그리고 방송에서는 태풍에 대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계속 안내를 해주었다. 그 중 하나는 정전이 될 것에 대비해 초를 준비하라는 것이었는데, 외국 생활 중인 우리들은 그 때 초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이웃에 살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초를 나누어 주었다. 자연적인 재해가 닥치니 이웃사람들이 서로 음식도 챙겨 주고 더 많이 도와주고 그랬다. 아빠도 그 날 보통 때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셔서 덧문도 잠그고 침수될 만한 곳이 혹시 있는지 지하실도 살피셨다.

        일기예보는 태풍이 우리가 살던 지역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을 알려주었는데 대략 밤 12시경이라고 했다. 아빠의 설명에 의하면 태풍은 해안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내륙으로 전진하다가 육지에 상륙하면 힘이 약해진다고 했다. 우리가 살던 곳은 해안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해안보다는 훨씬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전한 곳은 못 되었다. 저녁때가 되어 점점 바람이 강해지면서 빗방울이 거세게 유리창을 탁탁탁탁 때렸다. 우리는 일찍 저녁 식사를 끝내고 불필요한 전등을 모두 껐다. 그 날 예상되는 태풍의 이동 경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TV 방송에서는 태풍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 설명에 의하면, 태풍은 일종의 저기압으로 태풍이 해안에 접근하면 기압의 감소로 해수면이 높아진다고 한다. 거기다 파도도 높아져서 해안에 있는 시설물들이나 가옥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도시에 살아서 그런 경험을 못해봤지만, 미국 집은 주변에 나무들이 아주 많아 처음으로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막내인 나는 엄청 센 바람이 무서워서 집의 가운데 부분에서 엄마 아빠 곁에 붙어 앉아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도 바람이 더욱 거세어져서 창문이 덜컥덜컥거리고 밖에 서있는 나무들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우리 집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이 쓰러지면 우리 집과 우리도 깔리는 거다.’ 하는 아빠의 걱정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 소리와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밝고 잠잠했다. ‘어!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조용해졌지?’ 결국 우리가 살던 집은 무사했던 것이다. 그 큰 나무들이 쓰러지지 않았고 물이 찬 곳도 없었다. 창문이 온전하고 문들도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궁금한 생각이 들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는데 그 곳의 모습은 아주 달랐다. 우리 집에서 멀리 않은 곳에 나무가 하나 쓰러졌는데, 그 나무가 전기 줄 위로 넘어져서 옆집에는 정전이 되었다. 조금 더 나가 보니 큰 느티나무가 도로 위에 넘어져 있어서 차들이 지나갈 수도 없었다. 그 태풍으로 자연재해를 겪은 주변의 여러 집들은 며칠 동안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서 캄캄한 채 지냈으며 요리도 해 먹을 수 없었다.

        그동안 책이나 방송에서나 보던 그 태풍을 나는 그때 직접 겪었다. 그로 인해 나는 3일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날씨가 잠잠해진 후 나는 집 밖에 나가 쓰러진 나무들을 많이 보았고 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 좀 놀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정전으로 인해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태풍은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일기예보가 더 정확해야 할 것이다. 더욱더 정확히 태풍이 지나가는 시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도 우리 집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일기예보 덕에 우리 가족은 일찍 하루 일과를 끝내고 다가오는 태풍에 최대한 대비를 했다. 만약 일기예보가 없어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태풍을 알 수 없다면 그 피해는 훨씬 더 크겠지? 일기예보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고 재해를 막아 주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