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만필(16) -  눈의 공포 

눈이 내린다.

함박눈,싸락눈,가루눈, 메눈, 찰눈,진눈깨비등 그 형태도 갖가지요,

결정의 모양도 별 모양,기둥 모양,나뭇가지 모양,각설탕 모양, 육모

모양등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다 숨겨 놓고 있다.

이게 모두 하늘의 상태(기온 습도등)에 따라 정해 진다고 해서 “눈은

하늘에서 온 편지”라고도 한단다.

눈이 쌓이는 모양은 각색 없는 훌륭한 예술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지만, 자연 그대로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적설의 아름다움은

언제까지 보고 있어도 지겨워 지지 않는다.

적설의 미는 대설이 내렸을 때보다는 알맞게 내렸을 때가 일품이다.

기온도 아주 낮을 때 보다는 영하 2도 내외 일 때가 가장 좋은 상태다.

이런 점에서 설경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지역은 한대의 대설 지역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온대지방(북위 35도 부근)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눈은 늘 아름답기만 하던가.

적당량을 넘어 호설이 될 지경이면 바로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한다.

눈 속에 묻혀 있던 철봉이 봄철에 눈이 녹을 때, 활처럼 휘어져 있는걸

본 일이 았는지.

적설의 무게는 처음 쌓일 때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1m의 눈이 쌓였을 때는 1평방m당 300kg의 무게를 갖는다.

따라서 50평방m의 지붕 위에 50cm의 눈이 쌓였다면 그 무게는 자그

만치 7.5t 이나 된다. 체중께나 나가는 남자 백명이 한꺼번에 지붕위에

올라 있는거나 같은 셈이니 웬만한 집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눈이 많은 곳의 지붕은 경사가 급하다.

눈은 고압선에도 곧잘 얼어붙는다. 특히 수분을 많이 가졌을 때는

전선에 엉겨 붙었다가 이것이 얼면 그 무게로 해서 전선이 끊어진다.

산과 산을 넘는 긴 송전선이 한 가닥만 끊어져도 하나의 도시 기능이

마비되고, 이를 보수하는데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 정도는 차라리 약과. 눈은 철로를 엿가락처럼 휘게도 하고 송전탑을

주져 앉게도 한다. 앗 무서워!

허지만 눈의 공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눈사태 -.

비탈진 곳에 눈이 쌓이면 그 무게로 눈은 미끄러져 내린다.

눈이 한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점점 속도가 불어나고 동시에

대량의 눈을 휘몰아 중량도 점점 늘어 난다.

마침내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굉장한 속도로 긴 비탈을 순식간에 낙하

하면서 엄청난 굉음과 바람을 일으킨다.

스위스에서 눈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 개의 눈덩이가 굴러 내리는

속도를 스톱워치로 측정해 보았더니, 낙하하기 시작해 360m 지점에서

시속 320km나 됐다고 한다

또 이때 몰고 내려가는 거대한 눈 무더기가 전면 암벽에 충돌, 그 압력

으로 발생한 폭발적인 강풍이 주변에 있는 수령 100년이 넘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렸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관광버스가 다리 위를

지나다 눈사태가 몰고 온 강풍으로 날아가 버렸고 차에 타고 있던

스키어 23명이 몰사한 일도 있다. 도무지 상상 밖의 일이 아닐수 없다.

1971년 초에 우리나라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적설기 등반 훈련을

하던 산악인 10여명이 눈사태로 희생된 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눈사태는 계절적으로 2월에 일어나기 쉽다.

눈이 길로 쌓인 산에서는 “야호-” 하고 기분 내는건 절대 금물.

심지어는 기침 소리도 자제해야 한다.

눈이  내린다.

무슨 심술을 부릴려고

소리없이 내리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