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만필(17) - 입춘대길

" 만일 겨울이 온다면  어찌 봄이 멀었어리오"

  세시기에서는 입춘을 동풍해동(東風解凍)이라고 해서 차가운 북풍이 걷어지고

동쪽 바람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 했으며, 옛날 동양의 군왕들은

군신을 거느리고 동쪽뜰로 나가 봄의 계절을 맞이 했다고 한다.

농사를 위주로 하는 동양에서는 입춘 이후를 봄으로 셈했다.

그러나 일상생활과 레크레이션을 위주로 하는 서양에서는 계절을 구분 할때,

동양의 구분 보다는 한달 보름 가량이나 늦은 춘분(3월 23일 전후)이 후를

봄이라고 셈한다. 어느 기후학자는 계절의 구분이 다른 것으로 도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고 했다.

세시기에서는 또 입춘이후의 추위를 여한(餘寒)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입추이후의 더위를 잔서(殘暑)라 하는것에 상응되는 말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중부지방의 기후로는 말이 여한이지 실제로는 한겨울의 추위 보다 더

심할 때가 많다.

우리 나라 기후표를 보면 중부내륙지방은 여태까지 가장 낮았던 기온 이 입춘

이후에 나타난 곳이 많고, 서울 지방의 경우도 2월 9일에 -19.6도 까지 내려간 기록이 있다.

그래서 피부로 느끼는 추위라든가 주위환경 등은 어제와 다름이 없으나 다만 입춘이라는

어휘에서 오는 계절감과 나날이 밝아져 가는 하늘의 상태 등에서 어딘가 모르게 봄의

분위기가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 이 계절이 갖는 의미라고 하겠다.

당연히 입춘도 축제의 분위기 였다.

평균적으로 보면 음력 정월초하루도 입춘과 시기를 같이할 때가 많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새해와 새봄을 함께맞는 즐거움을 누렸던것이다

영어의 January라고 하는 것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문호의 신으로 “일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태음력을 많이 썼던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시베리아 북부의

에스키모인 들은 “정월은 태양이 길어지는 달”이라는 뜻으로 부르고 동양에서는

“볍씨를 담그는 달”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나라가 많았다.

우리 나라의 설날도 절기 상으로 입춘을 전후해서 드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축제의 분위기도 어디까지나 새봄맞이와 새해 농사를 위한

것이 그 시초였다고 할수가 있다.

농가에서는 이무렵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

그래서 보리뿌리가 세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보았다.

실제의 날씨 상태로 보아도, 이 무렵까지 보리 뿌리가 한 가닥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면

지난 겨울의 날씨가 순조롭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또 겨울의 날씨가 순조롭지 못했다는 것은 다가올 초여름 날씨도 고르지 못한 것을 예고하는

것으로 통계는 가르쳐 주고 있다.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는 말이 있지.

입춘에 군왕이 동쪽뜰로 나가 계절맞이를 한것은 바로 오리엔테이션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대학 신입생들은 새학기에 오리엔테이션을 갖는다. 이경우는 대학생활의 방침을 정한다는 뜻이 있다.

오리엔트라고 하면 東또는 東洋 이라는 뜻인데 어째서 “방침 결정” 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걸까?

오리엔테이션의 원래 의미는 “(교회의 성단등을)동쪽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크리스트교의 성지 예루살렘이 유럽의 동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연유해 “방침이나 방위를 정한다”는 뜻이 생기게 된것. 그리고 오리엔트에는

“동쪽 하늘”이라는 뜻도 있어, 옛날에는 태양이 뜨는 동쪽을 방위 결정의 근원으로

삼은것도 한 원안이 되었다고 하겠다.

가정에서도 오리엔테이션은 필요하다 싶어 몇번 시도 해 보았더니 “아빠 단배 끊어세요,

술좀 줄이세요”라는게 화두가 되더군.

얼른 집어치워 버렸지.

“오리엔테이션, 아무나 하나. 윗물이라도 맑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