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만필(21) - 식물이 깨는 경칩(驚蟄)

중국에는 구구가(九九歌) 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연중 가장 추운
시기를 9일 단위로 나눈 것인데 주로 빈민들 간에 불려졌다. 구구는
동짓날을 기점으로 해서 81일이 되는 날까지의 추위를 요즘의 구구
셈법에 따라가사를 붙인 것인데 일명 구구소한법(九九消寒法)
이라고도 한다.

[一九 二九 不出手(12월 22일-31일)] - 날씨가 추우니 두 손을 소매
속에 넣고 다닌다.
[三九 四九 河上走(1월 1일-18일)] - 강이 얼어 사람과 말이 강위를
걸어 다닐 수 있다.
[五九 六九 沿河看柳(1월 19일-2월 5일)] - 날씨가 따듯해 져 버들
가지가 파릇해 진다.
[七九 河開(2월 6일-14일)] - 강이 풀리기 시작한다.
[八九 雁來(2월 15일-23일)] - 날이 푹해 기러기가 날라 온다.
[九九 耕牛遍地走(2월 24일-3월 4일)] - 밭을 가는 소의 모습을 어디
서나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동지에서부터 구구는 81日이 지나야 (절기로는 경칩의 하루나
이틀 전)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고 없는 사람도 발을 뻗고 잘 수가 있게
된다는 것.
구구소한법은 추운 계절의 전 과정을 생활과 자연현상으로 표시한
것인데 이 노래의 목적은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농사시기를 파악
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구구 소한의 가사는 지방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계절상으로 보면 경칩 이전까지가 겨울을 정리하는 계절이었다면 경칩
이후는 만물이 혹은 소생하고 혹은 활동을 개시하는 그런 계절로 접어
드는 시기가 된다.
원래 경칩이라면 작년 10월 하순에 땅속으로 들어갔던 개구리, 뱀 같은
냉혈동물이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게 된다는
절긴데 실제의 기후는 아직 늦추위가 도사리고 있어서 땅속의 동물들이
함부로 세상 밖으로 나올 게재가 못된다.
다만 그들 자체의 몸에서는 벌써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기후대가 다른 북국에서도 이 무렵이 되면 땅속의 곰이 봄의 방향으로
잠자리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곳 사람들은 곰의 그러한 변화를 살펴서
계절의 늦고 빠름을 짐작 했다고 한다. 곰은 미련한 동물이라고 하지만
계절 감각만은 그런 데로 예민하다고.
옛날 미국의 농민들도 이 무렵이 되면 땅 두더지를 찾아 다니면서
두더지가 보이면 봄이 온 것으로 알고 씨 뿌릴 준비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칩은 남부지방이 3월 중순, 중부지방은 하순부터 시작
된다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무렵은 동물의 경칩기라기 보다는
식물의 경칩기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리며 동물의 경칩은 식물보다
20일 가량 늦어 지는게 보통이다.

계절사전에는 植物期間 이라는 것이 있다. 하루의 평균기온이 섭씨 5도
이상 되는 날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 기온은 식물의 생육상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보리를 비롯한 월동식물은 물론 모든 수목과 꽃나무 따위도 이 기온에서
비로소 생육을 개시하고 그 아래에서는 동면상태를 계속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식물기간, 그러니까 평균기온이 5도선에 이르는 시기를
보면 3월 초에 남해안에서 출발해 15일 경이면 삼척, 왜관, 광주 북쪽을
잇는 선상에 이르고 3월 20일 경이면 속초와 천안을 잇는 선까지 북상한다.
그런데 식물 기간선이 북상하는 속도를 계산해 보면 남부 내륙지방
에서는 추풍령 고개에 이르기 까지는 하루평균 8km의 속도로 북상
하고 이것이 추풍령을 넘어서 중부지방에 이르면 그 속도가 하루에
20km로 빨라 진다.

한번 움츠렸다 뛰는 개구리가 멀리 간다,
3월의 계절도 그렇다.
아무리 난동이라지만 이맘때먄 한차례 주위와 대설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다음에야 봄은 구보로 달리게 될것이다,